천동설을 지지 했던 사람들은 행성의 역운동을 설명하려는 노력에 앞서 땅은
움직일 수 없다는 믿음이 강했다고 생각합니다.
천동설이 과학이었던 때도 있었고 종교였던 때도 분명 있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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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은
당대의 다른 천문이론에 비해 행성의 역운동을 "더 잘" 설명했기 때문에
주류 이론이 된 것으로 압니다.
그 후 지동설이 나오기까지 천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 것은
더 잘 설명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기 보다는
변변한 천문 장치가 없었기 때문으로 보는 게 더 합리적일 것 같습니다.
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지지하게 된 것도
스스로 망원경을 개발해 목성의 위성을 최초로 관찰했기 때문이지,
다른 사람들보다 "과학적 사고"를 더 잘했다고 보긴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.
비슷한 예로는, 흔히 전자기 유도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
현재 외르스테드로 공인되어 있지만, 그 전에 Romagnosi가
전자기 유도와 비슷한 현상에 대해 저널에 글을 실은 적이 있습니다.
"최초성"에 대해 다양한 시각이 있기는 하지만,
같은 현상에 대해 외르스테드가 더 분명하고 정확한 결론을 도출한 데에는
볼타의 연구가 필수적이었고, Romagnosi는 그 도움을 받지 못했기 때문으로
설명하기도 하지요.